본문/내용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그의 말은 곧 자연을 아는 것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이를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법이다”라고 규정하였다.
갈릴레이는 이 우주가 삼각형 원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이라는 수학적 언어로 씌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갈릴레이에게 수학적 진리는 필연적이고 영원한 진리였다. 그에게 있어 실재하는 자연은 바로 양적인 것으로 계산 가능한 것에 불과하다. 그 결과 맛, 향기, 색깔, 감촉, 소리 등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존재의 세계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형태, 크기, 운동 등 양화 가능한 성질만이 실재한다고 보는 사고는 로크에 이르러 제 1성질과 제 2성질의 이분으로 정식화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데카르트의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체의 이원론도 근대적 자연관의 한 축을 이룬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는 사유를 속성으로 하는 정신과 연장을 속성으로 하는 물체 두 가지인데,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어서 정신은 연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물체는 사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곧 물체이며, 그 물체는 곧 연장인 것이다. 이때 연장이란 형태와 크기와 같이 공간을 점유하는 성질로서 기하학적 대상이다. 그리고 그 물체는 공간적 이동, 즉 운동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데카르트의 자연은 정신과는 전혀 무관하며 다만 형태, 크기, 운동의 속성만을 지닌, 따라서 기하학과 역학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라는 매우 협소한 의미만을 갖게 되었다. 결국 데카르트에게 있어 자연물은, 그것이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할 것 없이 심지어는 인간의 신체까지 기계적인 법칙에 의해서 작동하는 하나의 기계이다. 맛과 향기와 색깔이 빠져버린 그리고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않는 자연, 그래서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속속들이 그 비밀이 파헤쳐질 수 있는 자연, 그래서 인간이 완벽하게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연이 근대인들의 자연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