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리를 마음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정제두의 문제 의식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마음 안에 그 리가 있거나 마음이 그 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만 한다. 이에 대해서 정제두가 제시한 것은 심즉리의 원칙이다. 그러나 “마음이 곧 리이다”라는 양명 심학의 제일 원칙은 자칫 모든 리가 마음에 내재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 이 원칙을 정제두는 “리가 마음에 있다”가 아니라 “리가 마음에서 나온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 지닌 도덕적 자각 능력, 즉 양지良知가 부각된다. 주자학에서 성과 정으로 명백하게 구분되는 인의예지와 측은·수오의 마음을 그는 별개로 보지 않았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자를 모두 양지로 환원하기도 하였다. 그는 성, 사단, 명덕, 양지와 같은 개념을 주자학에서와는 달리 통합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양명의) 그 뜻은 대개 측은의 발현이 곧 이 양지라고 한 것에 불과하다.…… 측은한 마음이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양지이다. 이 양지가 능히 측은하는 것이니 실은 (측은과 양지가) 하나일 뿐이다.…… 대개 사람의 생리生理는 능히 밝게 깨닫는 바가 있으면 저절로 능히 두루 통하여 어둠이 없게 되고, 이에 측은·수오·사양·시비 어느 것이나 다 능히 못하는 것이 없게 되니, 이것이 그 고유한 덕으로서 이른바 양지라는 것이며 또 이른바 인仁이란 것이다.…… 만약 이 양지가 없다면 완전히 목석과 같아서 아무런 지각도 없을 것이니 누가 능히 측은할 수 있겠는가?…… 측은지심이 곧 양지이며 심체의 지知가 곧 생리인 줄 모르니,……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는 것이 인이 아니고 측은지심이 아닌가? 이른바 양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