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글에서 보듯이 궁리의 영역은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개인적인 영역에서부터 다른 사람과 관계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데 이르기까지 폭넓게 망라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 리는 개인적인 것이든 사람들 사이의 것이든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초목금수와 같은 자연 존재의 리도 역시 ‘마땅한 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외가 아니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리가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그 리가 자연의 객관적인 리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 그 리에 대한 탐구가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이도 인용하고 있는 정이의 언급에서도 확인되는데, 그가 리를 인식하기 위해 공부해야 할 대상으로 거론한 것은 책, 인물, 그리고 실천 속에서 만나는 대상이었지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 사물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부를 통해 인식해야 하는 리 역시 몰가치적인 자연 법칙이 아니라 의리, 시비, 마땅함과 같은 유가적 가치였다. 주자학의 리는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파악되는 자연의 리가 아니라 인간의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리였던 것이다.
이이가 “리를 궁구하는 데는 책을 읽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고 한 것 역시 자연학적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성현이 마음을 쓴 자취와 본받을 만하고 경계할 만한 선악이 모두 책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독서의 목적은 몰가치적인 지식의 습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