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싸르트르가 강조하듯이 나는 나의 미래인 동시에 아직 나의 미래가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미래는 아직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 아직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음, 즉 비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책 한권을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결심한 이 책쓰기는 나 자신의 존재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심은 나를 불안케 한다. 불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 책쓰기가 실현되지 못하고, 한낱 가능성으로만 남을 수 있다는, 즉 이러한 가능성이 철저하게 무화되어 버릴 수 있다는 앞선 의식에서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무화 가능성 앞에서의 불안은 동시에 나의 자유에 대한 의식을 더욱 뚜렷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무에 대한 불안 안에서, 그 불안을 통해서 나는 다름아닌 나 자신의 자유를 가장 뼈저리게 의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자면 내가 경험한 불안은 결국 나 자신의 자유에 대한 반성적 경험이다. 그러므로 세상 일로 바빠서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사람은 -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자면 자기를 상실한 채 비본래적으로 실존하는 자는 - 불안을 느낄 수 없고,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의 고유한 자유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불안과 자유에 대한 경험(의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의 일정한 거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 분주하고 싶어 하는 것의 근저에는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우리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으로부터의 도피, 즉 불안으로부터 도피를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