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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이래의 실학적 전통을 잇고 있던 박규수(박규수), 오경석(오경석), 유대치(유대치) 등의 일련의 선진적 지식인들은 양무운동단계의 청국을 직접 견문하거나 서양의 사정을 소개한 청국서적의 영향을 받으며 세계사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상의 형성과 그 세력의 확대에 노력했다. 이들은 김옥균, 박영효, 김윤식, 유길준 등 양반 청년관료들에게 `시무(시무)의 학(학)`에 힘쓸 것을 권하고 그들을 지도했다. 박규수는 척사론자들의 화이관을 극복하고 청국이나 일본, 서양이 모두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아 통상개국론 등의 현실적 노선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때 박규수가 서양에 대한 지식을 받아들인 서적은 {해국도지(해국도지)}와 같은 열강의 무력침입에 대응할 수 있는 기선제조 등의 해방론(해방론)을 중심으로 한 청국 양무운동론자들의 저술이어서 그의 `시무의 학`도 여전히 전통적 사회체제, 곧 `동도(동도)`, `동교(동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국을 모델로 한 양무론적 개혁론이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후 1차 수신사 김기수일행은 조약체결에 따른 방문을 하여 주로 군대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일본의 `부국강병`에 대해 김기수일행이 고종에게 보고하면서 민씨척족을 비롯한 정권의 담당자들도 이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1880년 2차 수신사 김홍집일행이 파견되었다. 김홍집은 이 때 청국공사관 참사관 황준헌 등과 회담을 통해 세계의 대세, 통상문제, 조선의 앞으로의 대외관계 등에 대해 의견을 듣고 귀국하면서 황준헌의 {조선책략}과 정관응의 {이언}을 가지고 왔다. 이 두 책은 당시의 조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