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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문명에 대한 연구는 1870년의 슐리만의 발굴을 시작으로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먼저 트로이의 유적은 1870년에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에 의해서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다. 슐리만은 시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에 역사책의 삽화에 그려진 옛 트로이市 성벽의 웅장함을 보고 언젠가는 발굴하리라고 결심하였다. 부모가 죽은 뒤 각처를 유랑하면서 급사·서기·상인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여 온갖 파란곡절을 겪었으나, 마침내 재산을 모아 40세가 넘어서야 소년시절부터의 꿈이던 트로이 발굴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는 먼저 세계 각지의 고적을 찾아 다니면서 견문과 지식을 넓히고 고고학을 공부하는 한편 호메로스의 詩 가운데 나오는 지방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그리스 출신 부인 소피아와 함께 히사를리크 언덕을 파내려 가기 시작하여 수천점에 달하는 황금제 유물을 발굴하였으며, 그 결과를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발표하였다. 이어 1876년 슐리만은 호메로스가 그의 詩에서 묘사한 보물들을 미케네에서 경이적으로 발굴하였다. 이것은 황금제 유물로서는 최고의 수집물이었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 발굴하였으며 전문가들의 협동을 얻어 옛 문화를 학계에 소개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에게 문명의 또 다른 중심이었던 크레타섬의 발굴은 영국의 에반스(Sir Arthur J. Evans, 1851~1941)에 의해서였다. 이반즈는 부유한 공업가이며 선사고고학자의 아들이었는데, 1900년 크레타섬의 크노소스를 발굴하였다. 그는 5년 동안 크노소스市터를 발굴하여 길이 1~2.5킬로미터가 되는 이 도시 중심부에 궁전이 있고 도심에는 왕족, 귀족, 상층민이 거주하고, 교외에는 하층…
한편 에게 문명의 또 다른 중심이었던 크레타섬의 발굴은 영국의 에반스(Sir Arthur J. Evans, 1851~1941)에 의해서였다. 이반즈는 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