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삼 년전, 법정의 무소유를 처음 만났다.
그뒤로 마음이 탁해질 적마다 펼쳐보기를 꽤 많이 반복했다.
나와는 종교가 다르면서도 전혀 거부감없이 느껴지는 맑은 영혼과의 대화, 그것은 이 책 속에 숨겨져 있는 깊은 사색과 버리고 비우기의 향기로움 때문이었다.
본문/내용
바흐의 음악과 녹차 한잔이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겠다는 마음의 충만함이 책의 갈피 갈피마다에 숨쉬고 있어 무소유를 읽는 내내 나는 행복했다. 특히 38쪽의 설해목과 66쪽의 잊을 수 없는 사람은 잔잔한 감동으로 내 가슴 속에 오래오래 남아있는 줄거리이기도 했다. 이 대목을 읽고 있으면 자식마저도 내 것인양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모든것을 내 마음의 욕심에 따라 늘 무엇인가 끝없이 요구한 부모라는 이름이 부끄러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위엄도 권위도 아닌 오로지 자비라는 것과, 바닷가의 조약돌을 예쁘게 다듬는 것은 부드러운 물결이고 아름드리 나무를 꺾는 것은 사뿐히 내려 앉는 하얀 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깊은 사유 끝에 걸러진 맑고 향기로운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근원적 따사로움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 내용이었다.
잊을수 없는 사람인 수연스님 또한 자비를 몸소 실천해 보인 부드러운 물결과 같은 이었다. 추운겨울날 80리 길을 걸러 친구에게 약을 지어다 먹이고 버스의 창을 고치고 신발을 깨끗히 닦아 놓앗던 그는 말없는 보살이었고 부처였다.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이 아니라고 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 따뜻한 손과 말없는 행동에서 혼과혼이 마주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법정은 수연스님을 통해 일러 주고 있다.
짧은 세상이었지만 사랑을 실천하고 떠난 수연스님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참다운 삶인가를 분명히 새기고 갔다. 많지는 않지만 법정이 실생활에서 만난 사람과 사람사이의 굵직한 인연들은 이처럼 더할나위 없이 진하고 향기로웠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좋은 감정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