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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은 근대의 양면성에 대한 감각이 극히 투철했던 보들레르에게서는 <근대 숭배 modernolatry>와 <문화의 절망cultural despair>이라는 형태로 양극화되는 근대성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 양식의 원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양극화된 20세기적 근대성 비전의 한쪽에서 근대의 물질적, 기술적 진보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가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드러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한쪽이다. 근대숭배, 성장=진보, 가벼운 문화주의 등의 표현 속에 들어온다. 다른 한쪽-문화의 절망, 도덕성, 엄숙주의 등-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따라서 비판이론은 그 다른 한쪽의 고개를 들게 해주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경고의 사이렌>으로서의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 비판이론의 수용자는 물론 공급자조차도 <경고의 사이렌>을 달아두었다는 것으로만 만족할 뿐 그것이 정작 경고의 사이렌을 울릴 지 안 울릴 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화론은-주로 지식인에게- 당시대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지적 탐색이란 몫을 맡는다. 정치.경제적으로 경직된 사회의 경우 그 문화는 진보적으로 나아감에 의해 현실의 억눌린 욕구들에 숨길을 터주는 기능을 떠맡는다. 이는 문화사회학의 기본 가설의 하나다. 4.19 문학관, 1970년대의 문학사회학논의, 1980년대의 민중문화론 등으로 이어져 온 우리 지식인 문화의 흐름에서도 그 점은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990년대 문화론은 그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문화영역이 정치나 경제의 부담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벗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민중문화의 퇴조가 이를 웅변한다. 그래서 그런지 현실은 없고 문화만 있을 뿐이다. 그 문화를 보고 읽고 하면서 <대체 현실>을 누리는 일이 휠씬 재미있고 편한 모양이다. 비판과 저항의 정신이 급격히 몰락하여 생겨난 가치의 진공상태가 젊은 세대로 하여금 `대중문화의 멋진 신세계`에 쉽게 몰입케 한다. 그리하여 `이념의 시대는 가고 문화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