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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G. Legrenzi에게서 음악수업을 받음. 1703년 신부서품을 받음(천식으로 인해 곧 예전집행은 하지 않게 됨). 1703-40년 베니스의 고아원에서 바이올린 선생과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
클래식 작곡가 중 `거의 대중음악가적인 명성`을 누리는 비발디는 당시에도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하나였으며 작곡가로서 동시대인들의 작품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알비노니, 토렐리와 함께 바로크의 독주콘체르토형식의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장르는 콘체르토로서 당시에는 매우 새롭게 들리는 음악이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에 출판된 14개의 모음집은 그의 소나타와 콘체르토를 널리 세상에 알려주었다. 하지만 성각곡의 작곡가로서는 20세기초에 들어서야 재발견된다.
그의 콘체르토는 오페라의 요소를 담고 있으며(느린 악장의 모델이 된 것은 탄식가, Lamento), 1700년 경에 쓰여진 선명한 박절적 테마들은 상당히 기능화성학적이다. 그의 테마작법, 선율의 단계적 움직임, 음악형식 등은 당시 바이마르에 있던 요한 세바스찬 바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9개의 콘체르토가 바하에 의해 다른 악기를 위해 편곡된다.
비발디는 현악기의 연주기법을 확대시킨 인물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에서 새로운 활 사용법 등을 포함해 제12포지션까지 요구하였으며, 첼로 콘체르토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엄지손가락만을 이용해 연주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비발디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리고 흥행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여가수 안네 지로(Anne Giraud)와의 친분관계로 인해 교회지도부에 의해 그의 오페라가 페라라에서 연주 금지된 것(1737년)은 유명한 사건이다. 알려진 49개의 오페라 중 19개는 완전히 그리고 몇개는 부분적으로 보존된 상태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긴 프레이즈의 레치타티보들과 극적인 음악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끔 급하게 쓴 청탁작품들에서는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음악을 차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