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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르고 18세기말 독립을 쟁취한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양축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국시(國是)로 표방한 나라였다. 그러니 만큼 국시에 위배되는 노예제는 건국 초부터 비판받을 수밖에 없었다.
독립을 계기로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에서는 노예가 해방되었으나 노예 노동력에 바탕을 둔 면화농업이 발달한 남부의 강력한 반대로 남부지방에서는 노예제가 그대로 존속되었고 미합중국 헌법에도 노예제가 용인되고 있었다. 1808년, 노예 수입이 금지되었으나 국내에서는 더 활발히 노예가 거래되고, 노예 가격의 상승에 따라 노예의 생활은 더욱 비참해졌다.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노예가 잇달아 해방되면서 미국도 북부를 중심으로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1831년에는 노예제 폐지론을 주창하는 정기간행물 <해방자>가 창간되었고, 1833년에는 노예제 반대협회가 설립되었다. 1854년에는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모여 공화당을 결성함으로써 노예해방이 정치적인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860년, 노예제에 반대하는 공화당 출신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미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이어서 미시시피,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앨라배마, 조지아의 6개 주가 잇달아 연방에서 탈퇴하여 남부 7개 주가 ‘남부연합’ 정부를 결성했다. 남부연합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의 섬터 요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이곳을 수비하던 북부군의 퇴각을 요구해왔다. 1861년 4월 12일, 섬터 요새에 대한 남부연합군의 첫 발포로 ‘남북전쟁’은 시작되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가던 1863년 1월 1일, 링컨은 ‘노예해방령’을 공표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끎으로써 노예 해방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