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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8월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IAEA)에 보고된 소련 대표의 이야기로는 그간의 사망자는 31명이고 입원환자는 200명에 이른다고 한다.발전소에서 30Km이내의 방사선준위 초고치는 10-15 mrem/hr였고, 5월5일에는 2-3mrem/hr로 떨어졌으며,5월8일에는 0.15로 내려가 Kiev시 수원지는 기준내의 값이었다. 이밖에 이웃 나라는 모두 허용한계이내의 값이었고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비속에서 방사성물질을 탐지했으나 그것은 중공에서 핵실험했을 때에 비해 월등히 낮은 값이었다.열출력 320만kw,전기출력 약 100만kw인 체르노빌 제4호 원자로는 정기실험과 보수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운전원들은 예정된 원자로실험과 터빈의 rundown실험을 위해 원자로출력을 20만kw로 낮추려 하였으나 운전 잘못으로 7만 kw로 내려가고 말았다. 그래서 20만kw로 다시 끌어 올리려였으나 시간이 오래 걸릴것 같아 자동제어(auto) 대신수동으로 작동(manual operation)키로 하였다. 이때 또 하나의 장해물은 중성자 증가를 억제하는 30여개의 제어봉(control rod)이었는데 이 제어봉이 노심안에 꽃혀 있어 출력을 빨리 올릴 수 없으므로 7-8개만 남겨 놓고 모두 뽑아버렸다. 물론 이것은 규정위반이지만 그들은 빠르로 손쉬운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이런 위험한 상태에서 실험을 강행한 결과 이번엔 비상계통(EngineeredSafety Features:공학적안전설비)이 자꾸 작동하여 노심안으로 찬물이 주입되어 장기간에 걸친 동일조건하에서의 실험치를 얻을 수 없게 되자 이번엔 비상계통마저도 끊어 버렸다. 이는 마치 안전벨트도 매지않고 기어(gear)도 빼놓고 브레이크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급경사인 내리막길을 차를 물고 가는 격이었다. 실험도중 출력이 급격히 증가하여 원자로의 폭주(run-away)와 화학적인 연소폭발에 이르기까지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