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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요지의 부병제설에는 물론 타당한 점이 없지 않아 있으나 그와 동시에 몇 가지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점들도 내포되어 있다.
첫째, ...
본문/내용
이 같은 요지의 부병제설에는 물론 타당한 점이 없지 않아 있으나 그와 동시에 몇 가지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점들도 내포되어 있다.
첫째, 중앙군으로 편성된 군인들 가운데 물론 지방에서 번상 입역 하는 농민군들이 소속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앙군 자체가 번상립역한 농민군으로 구성되었다는 어떠한 증거가 발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의 시대 상황으로 보아 국왕에 대한 경호나 도성 수비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중앙군 가운데 전문적 직업 군인들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지방에서 번상립역하는 농민군들이 담당하기엔 국왕에 대한 경호나 도성 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왕경에는 틀림없이 일정 규모의 전문적인 직업군인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고,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이들의 군역은 당대 신분제사회의 속성상 세습되고 있었으리라는 점까지 추리해 볼 수 있는데「군반씨족」이라 불리던 군인들이 바로 그러한 전문적 세습적 직업군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군인전은 고려토지제도인 전시과 체제의 일부였다. 이러한 전시과 체제 내에서 각급의 문무량반 관료들은 지급받는 소정의 토지에 대해 실제 경작농민들로부터 조를 받을 수 있게끔 되어 있는 수조지였다. 이러한 전시과 체제의 성격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군인들에 대한 토지도 수조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병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시과 체제 안에서 유독 군인전만을 군인들의 자경면조지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군인전을 받는 군인들이 번상립역하는 농민군인들이었다는 결론과는 합치되는 내용이지만 수조지 지급을 원칙으로 한 전시과 제도의 기본 성격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 군인전에 대해서만 특별히 예외적인 해석을 내린다는 것은 부병제설을 위한 너무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참고문헌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2000)
이기백 <고려병제사연구> (일조각, 1997)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1999)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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