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봉건시대 때만 해도 일반 백성들의 일상 생활을 위해 큰 규모의 공간을 설치하는 일이라는 게 극히 드물었었다. 지금의 공원과 시내의 광장 설치는 모두 민국 이후에나 생긴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廟會는 중국 민간 풍속 생활의 가장 집중적인 장소였다. 일반 백성들은 절 안에서 부처님께 복을 빌고 재난이 덜어지길 기도하며 마음의 평정을 구했다. 대규모의 종교적 행사가 있으면 그 주위에 수많은 민간 迎神賽會(민간에서 징을 울리고 북을 치며 각종 잡극을 벌여 신을 맞이하는 풍속)과 같은 단체가 형성된다. 그 단체의 구성원들은 신을 즐겁게 하는 것 보다는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사회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고대 도시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상업 판매 회로망도 없었고 사원을 중심으로 해 정기적으로 장이 형성되었었다. 교대로 개방되는 수많은 사원시장들은 시내(도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상업 회로망을 구성하게 되었다. 민간 예술인들은 廟會에서 기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여기서 민간가무, 잡기 그리고 체육공연 등이 가장 융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민간예술의 요람인 셈이다.
이렇듯 일반 백성들의 관혼상제, 衣, 食, 住, 行(교통)의 매우 커다란 부분이 廟會를 떠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廟會의 기간은 대체로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매월 정기적으로 여는 것인데 예를 들면 `逢三 廟` 처럼 매월 초3, 13, 23 으로 최소 3일을 개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