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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뮌헨에서 H.무테지우스(1861~1927)의 제창으로 건축가·공업가·공예가들이 모여 결성하였다. 무테지우스는 건축가로서 영국의 합리적인 주택 건축이나 명쾌한 공예품 생산에 감명받아, 강연과 논문 등을 통하여 독일공예계에 미술의 실생활화, 기계생산품의 미적 규격화 등을 주장하였다. 특히 생활 속에 미술을 도입하자는 사상은 영국의 시인이며 공예미술가이자 건축가인 W.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미를 위한 미술이 아니고 실생활의 미화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독일공작연맹은 근대사회에서 기계화의 의의를 적극 인정하여, 규격화된 기계생산품의 질적 향상을 강력히 주장한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공예운동보다 한 걸음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이 주장으로 미술과 근대공업이 결합한 공업디자인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연맹의 영향력은 1914년 쾰른에서 열린 ꡐ산업미술 및 건축전시회ꡑ를 계기로 더욱 커졌는데, 전시된 건물 중에는 근대건축의 본보기가 되는 반 데 벨데의 극장과 발터 그로피우스의 관청 건물 등이 있다.
독일공작연맹의 취지와 사상은 DWB 연감(年鑑)의 발행, 전람회 등으로 일반에게 알려졌으며, 유럽 각지에 많은 영향을 주어 1910년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스위스·스웨덴·영국 등에도 비슷한 조직이 결성되었다. 1933년 나치스에 의하여 해체되었다가 1946년에 재건되었으며 본부는 뒤셀도르프에 있다.
1.1. 독일 공작연맹의 배경 및 기본이념
19세기에 진행된 예술운동의 이론이나 실제는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러스킨이나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만 하더라도 단순히 역사주의 운동이라고 결론 지을 수 없는 깊은 윤리감이나 내포되어 있었으며, 아르누보를 중심을 한 세기말의 운동도 단순히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젖은 `선향화화적`인 움직임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