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무렵에 문경에서 이강년이 기병하였다. 그는 고향인 문경군 가은면 도티(현 상괴리)에서 처음 군사를 모아 농암에 유진하였다. 이강년은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에서 부사과 벼슬을 지냈으나 갑신정변 후 고향에 와 있었다. 그의 백부 기택도 무관으로 삭주 군수를 지냈는데 의병을 일으키는 데에 후원을 했다. 안동성을 버리고 달아난 관찰사 김석중과 순검 김인담, 이호윤이 이강년진에 잡히었다. 이들은 머리에 상투가 없었기 때문에 곧 의병의 척후병에 발각되었던 것이다. 김석중 일행이 서울로 달아나기 위해 새재로 왔으나 당시 새재와 충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유인석진의 군사들과 일본군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속리산 쪽으로 돌아가려다 잡히었다. 이강년은 이 3명을 농암 장터에서 목을 베어 군중에 보이었다고 한다.
이강년은 제천으로 전령을 보내어 함께 협조하자 했더니 유인석진에서 지원군을 보내겠다는 회신이 왔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모곡(마성면)에 진출해서 기다렸으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부득이 의진을 마고성(일명 고모성)으로 옮겼으나 곧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일본군운 대구에서 상주, 충주, 서울로 이어지는 통로에 많은 병참기지를 두었는데 문경에서 가까운 태봉과 수안보에 병참기지가 있었다. 마고성(돌고개)은 그 통로의 중간 지점이다.
1896년 2월27일, 의진은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패하여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이강년진의 첫 전투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심거벽이 전사하였다.
이강년은 나머지 군졸을 수습해서 안동으로 가 안동의 여러 의진들과 만난 후 죽령을 넘어 제천으로 갔다. 3월에 들어 일본군과 경군이 충주를 협공하여 지키고 있던 유인석진의 선봉장 김백선 등이 성을 포기하여 유인석진은 본부를 다시 제천으로 옮기었다. 이강…
유인석을 새로 입진하는 군사에게 언제나 다음같이 말했다.
참고문헌
http://www.hangiltop.or.kr
http://www.dalg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