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편 온 청춘과 마음을 십자가에 봉천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려는 나르치스는 골트문트가성역을 떠나려는 시간, 거룩한 소명을 준비하기 위해 단식과 철야기도에 들어간다.
골트문트는 이제 규육과 질서가 있는 수도원의 밝은 세계를 떠나 두렵고 어두운 속세를 향해 방랑길에 오른다. 수많은 사랑의 체험은 무상함과 함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고, 속박받지 않는 무절제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선 고독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으며, 죽음을 방어하기 위해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숲과 야수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교살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먼저 교살해야 했고,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온갖 공포를 감수해야 했고, 더운 여름을 실컷 즐기기 위해선 겨울의 추위를 골수까지 느껴야 했다.
이런 삶의 환희와 고통을 맛보며 골트문트는 예술적 세계에 가까이 간다. 어느 교회에서 본 아름다운 마리아상에서 그는 예술 형성의 본질을 깨닫고 그 상의 제작자인 니콜라우스 밑에서 조각가로서의 수업을 쌓는다. 그리고 그의 영원한 사우인 나르치스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을 창조하고자 한다. 그러다 다시 사랑과 자유의 편력 생활로 되돌아간 골트문트는 페스트가 항권하는 지방에서 죽음의 무도를 목격하는 등 시련을 겪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예술의 본질을 깨달으며, 특히 만물의 생명적 근원이라 할 인류의 어머니 이브에 대한 상을 품게 된다.
그리고 총독의 애인과 정사를 가진 것이 발각되어 처형의 위기에 직면했던 골트문트는 극적으로 나르치스를 만나 구출되고,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예술의 꽃을 피우게 된다. 이제는 어엿한 수도원장이 된 나르치스는 부단한 삶의 투쟁과 크나큰 희생의 대가로 창조에 몰입하고 있는 친구의 고단한 두 손과 열정에 찬 영혼을 들여다보며 천상으로 승화된 위대한 인간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인생의 온갖 신산을 맛본 골트문트는 나르치스와의 진정한 교감을 느끼며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