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arche가 스스로 운동하는 가운데 현실 세계의 사물화 되어간다는 이전의 자연 철학자들의 설명은, 물질의 생성 변화 자체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와 엘레아 학파 철학자들은 이제 사물 자체의 생성 변화에 대해 논하게 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반대자들이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며 만상의 이면에는 통일성이 숨어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투쟁은 생명의 원동력이다. 감각에 의해 파악된 현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것은 투쟁에 의해 이루어지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다.) 그에게 있어 정지되어 있고 불변하는 세계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는 죽음의 세계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우주는 영원히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는 불로써 상징된다.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와는 대조적인 존재론을 주장한다. 우선 그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동어 반복은 아니다. 존재란 움직이지도 않고 항상 자기 동일적인 것이다. 또한 존재는 `하나이고 전체이다`. 왜냐하면 존재와 존재를 나눌 수 있으려면 두 존재를 구분해 주는 비존재(무) 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이며 운동 변화하지 않는 그의 존재 개념에서 우리는 존재의 기원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주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운동과 변화를 부정하였는가?
만약에 X가 Y로 부터 생성되었다면 그것은
1) X가 Y 안에 있었던 것,
2) X가 Y안에 없었던 것,
3) Y가 X로 변화한 것 등의 경우를 가정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1)의 경우는 그전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므로 참다운 의미에서의 생성 (무에서 유로의 이동)이 아니다. 2)의 경우는 X가 무로부터 생겨났다는 뜻인데, 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