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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클린턴 시기의 수사법을 벗고 직설적인 방식을 택했다. 그는 계류중인 조약을 거부했으며 미군이 어떤 곳에서도 평화유지군으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부시 외교팀은 미국은 세계적 수준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즉 미국이 옳다면 옳은 것이 되게 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큰 틀에서는 동의했지만 방법의 문제를 둘러싸고는 이견을 보였다. 부시 내각에 대한 2001년 상원 청문회 과정에서 이견이 드러나게 되었다. 미 국무성 장관인 콜린 파월과 미 국방성 장관인 도날드 럼스펠트와 차관인 폴 월포비치는 서로 견해차를 보였다.
파월이 ‘동의’를 강조한데 비해 우파 강경론자인 월포비치는 ‘일방적인 군사력’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그들은 미국은 동맹국의 견해를 참고할 필요가 없는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슈퍼파워라는 점을 내세웠다.
처음부터 부시는 대담한 일방주의 정책으로 나갔다. 그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교토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러시아와의 요격 미사일 조약도 철회하고자 하였다.
그는 언론통제법을 강화했으며, 미국의 자금을 받는 보건기구에서는 낙태에 관한 언급조차하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동요가 일었다. 언론계 인사와 전문가들은 부시가 국제문제에 무지함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국제적 개입에서 단호하게 철회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렇지만 부시도 부통령 딕 체니도 주위의 논전에 대해 개의치 않았고, 자신들의 일방주의 경향을 분명히 할 뿐이었다.
부시의 일방주의는 클린턴의 접근과 수사적으로는 다를지 모르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부시의 보좌관들은 클린턴의 입장과 아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라크에 대해
한, 중국과 더불어 이라크 문제는 처음부터 부시의 보좌관들 사이에 가장 쟁점이 되는 문제로 부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