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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 이제는 모두의 관심 밖에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십명의 각기 다른 생각의 첨단을 보여주는 인물묘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가령 <태백산맥>같은 `대하소설`과 비교해보자.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은 훨씬 더 다양하고 다면적으로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독해법은 책 말미의 번역자 이철씨의 해설과 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리스 정교에의 귀의와 러시아의 전통사상을 옹호하며 이 소설 주인공들의 서구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무신론적인 철학을 비판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작중화자의 논리와 작가의 논리사이에 간격이 있어, 작가는 이 이야기가 다양한 각도에서 읽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악령`이란 시간과 장소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잠시 후에 살펴볼 것처럼 인간의 오래된 습성이다. 그것이 오늘의 내게 낡은 이 소설이 감동적이었던 까닭이 아닐까? 이렇게 다르게 읽은 소설의 부분을 나누어 살펴보자.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의 주인공은 서양교육을 받았으나 생각은 어린애 같은 늙은 퇴직교수가 있다. 그는 마치 드라마 `아줌마`의 `장진구`처럼 조롱되고 있으나 한편 순진하게 우스꽝스럽고 그 자신이 인생의 모순에 괴로워하는 가련한 인물이다. 열에 들뜬 상태에서, `너희 청년들이 폭동을 계획하는 등의 일은 오래된 이상향에의 열정의 전통아래 있는 거다. 너희는 우리와 같다`라는 어떻게보면 정곡을 (우연히) 찌르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