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루쉰의 `광인일기`에서 광인은 예교, 즉 구태의연한 당시 유교 사회가 인간들을 속박하고 죽이고 있음을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은유를 통해 비판해 냈다. 그는 잘못된 것마저 전통, 혹은 예법이라 포장되어 고착된 당시의 사회를 향해 이것은 이상하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라고 말하는 유일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는 선각자이며 계몽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사회가 그렇듯, 다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광인이라 치부하며 그를 가두고 몰아내며 수군거렸다. 광인이 아니면 계몽가일 수 없는 현실, 혹은 계몽가는 광인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 라고 치부하며 귀를 막아버리는 현실에서 앞서 나가려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절망하고 미쳐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나온 우리 역사 속에서도 한 발 앞서 나가며 새로운 것을 말해 주려 했던 많은 선각자들은 `미쳐버리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곤 했던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ꡐ동굴의 비유`를 들어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말한다. 플라톤은 동굴에 갇힌 죄수들이 항상 보는 벽에 나타난 사물의 그림자를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로 비유하며 그것을 `허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허상` 속에서만 사는 죄수들에게는 동굴 바깥의 `진실`을 경험하고 온 죄수가 오히려 광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 `광인`이 바로 스승 소크라테스였고 그는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깨우쳐 주려 다가갔을 때 많은 이들은 처음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전통이다, 그동안 항상 이렇게 해 왔다. 구태의연하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이것이 더 편하다, 하고 버럭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동안 봐 오지 않았던 햇살의 존재를 새로 인식하려 애쓰고 그동안 얼마나 잘못되어 왔는가를 인정하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의 기득권을 버려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더욱 그림자와 꽁꽁 묶인 스스로의 결박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