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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1685년에 왕이 된 제임스 2세가 쫓겨날 때까지 5년 이상 외국에 머물렀다. 1688년 가을 제임스 2세의 반대자들이 네덜란드 오라녜의 빌렘을 왕으로 추대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로크는 외교관 직책을 제의 받았으나 거절했고 탄원위원회에만 참여했다. 그러나 런던의 공기가 또 건강을 악화시켰기 때문에 1691년부터는 친구 프랜시스 경과 매섬 부인의 집인 `오츠`에 은거하면서 이따금 런던에 들르곤 했다. 로크는 은둔하면서도 휘그당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비록 토리당의 압력으로 그 폭이 제한되었지만 로크와 샤프츠버리가 추구하던 개혁은 `무혈의 명예혁명`으로 달성되었다. 입헌군주제가 수립되었고 시민의 자유, 종교적 관용,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이 대폭 확대되었으며 1695년에는 출판의 자유도 보장되었다.
말년에 로크는 주로 자신의 저작을 출판하는 데 힘썼다. 또 이자·이자율·조폐·무역 등에 관한 소책자를 쓰고 출판했다. 1695년에는 〈그리스도교의 합리성 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을 출판하여 덜 독단적인 그리스도교를 옹호했다.
로크는 1704년 죽은 뒤 하이레이버 교구 교회에 묻혔다. 매섬 부인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