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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主體)는 저고리에 어울리고 매듭과 술은 치마에 걸맞듯이 길게 늘어뜨려 노리개의 모양이 치마 저고리에 어우러지게 하였고, 화려한 술이 노리개를 더욱 돋보이도록 했다. 우리나라 여성의 전통의상인 한복에 잘 어울리는 고유한 장신구 노리개가 관습과 실생활에 적합하도록 발전되어 오는 동안 독창적인 형태의 아름다운 노리개를 창안함으로서 우리 민족의 생활감정과 예술적 창조능력을 바탕으로 하나의 특이한 감각을 성립시켜 왔던 것이다.
이러한 소박하고도 간결한 아름다운 의장은 민예적인 아름다움을 시현할 뿐만 아니라 장식의장은 물론 노리개를 비롯한 수많은 창의가 이루어져 ‘한국미’의 본바탕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고래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은보옥(金銀寶玉)으로 된 여성용 장신구류를 일반적으로 패물(佩物)이라고 부른 예가 있었으며, 이것은 상의 위에 패용하는 노리개가 여성 장신구의 으뜸이
었던 데서 오는 관용어였음을 뜻한다. 즉, 노리개는 한국 여성의 전통 의상인 원삼·당의 등 예장(禮裝)과 통상복인 저고리 옷고름에 차는 패식물(佩飾物)이었으며 때로는 치마허리에 차는 예가 있으나 이것은 격식차린 상례라고는 할 수 없다.
노리개는 원래 궁중에서 예장으로 비롯되어 상류사회로 번져 나갔고 이것이 조선시대 후기에는 일부 서민계층에까지 보급되면서 의식 때의 예의뿐만 아니라 평상복에도 간략한 소삼작(小三作) 노리개를 상의에 패용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옷고름에 차는 순수한 노리개는 그 양식과 형태에 있어서 중국이나 또 다른 나라의 영향없이 우리 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모양으로 독창적인 발전을 하여온 것이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고 치마가 길어지는 옷의 변형 때문에 그 단조로움을 보완하고 그런 복식에 어울리는 형태로 노리개도 변하여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