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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주로 남종문인화의 수용과정을 통해 수묵화가 발달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수묵화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 체계적인 파악이 불가능하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실용적 기능을 지닌 작품들뿐만 아니라 여기와 감상대상이 되는 작품 등이 다수 제작되었다. 전문으로 그림의 일을 관장하던 도화원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왕공사대부(왕공사대부)들이 여기로 묵매(묵매)·묵죽(묵죽)·묵란(묵란) 등을 그렸다. 그리하여 당시 수묵 위주의 문인화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화원화가보다도 그 수가 많아 이령(리영)과 그의 스승 이준이(리준이), 《해동기로도(해동기로도)》로 유명한 이전(리전)과 그의 아버지 이존부(리존부), 물고기 그림에 능했던 정득공(정득공), 매화를 잘 그린 정지상(정지상)과 차원부(거원), 묵죽을 잘 그린 정서(정서)· 이인로(리인로)·이암(리) 등이 있다. 초기에는 다양한 중국 화풍들이 전래되었는데 곽희파 화풍(곽희파화풍), 마하파 화풍(마하파화풍), 명(명)나라의 원체화풍(원체화풍) 및 절파화풍(절파화풍) 등이 고루 선보이다가 한국적 화풍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중기 이래 성하였던 절파화풍이 쇠퇴하고 남종화에 기반을 둔 문인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면서 중국의 산세와 이상미(리상미) 위주가 아닌 한국에 실재하는 산천(산천)을 한국적 화풍으로 그려낸 진경산수화(진경산수화)가 대두하여, 서정적이면서 소박한 정감의 수묵화가 풍미하였고, 인물화분야에서도 풍속화가 많이 나타나 한국 화풍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수묵화가라고는 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인물·산수·동물 및 대나무·매화· 포도 등의 그림에 고루 뛰어났던 당대의 화가는 공재(공재) 윤두서(윤두서)와 김두량(금두량) 등이다.
《묘작도(묘작도)》로 유명한 변상벽(변상벽)과 김홍도(금홍도)· 강세황(강세황)·겸재(겸재) 정선(정y)·최북(최북)·김석신(금석신)·심사정(침사정)· 이인문(리인문) 등의 화가들이 모두 수묵화에 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