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일본은 민간정치인, 군부가 일치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청국 정치인들은 주전론과 주화론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주전론은 광서제를 중심으로 한 측근들의 주장. 주화론은 서태후 일파의 주장으로 주도자는 이홍장. 이홍장은 중국 제일의 북양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일본과의 전쟁에서 그의 의견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군사력을 잘 알고 있었으며 전쟁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 뿐만 아니라 그의 북양해군이 전쟁에서 패하는 경우, 그의 정치적 기반은 모두 몰락하게 될 것. 그는 사간을 끌면 열강이 개입할 것으로 기대. 따라서 이홍장은 중국 군대를 아산만에 계속 주둔케 함. 일본군과의 접촉을 피한 것. 그러나 열강의 개입희망은 무산되고 7월 12일 일본은 두 번째로 절교문서를 보내옴. 결국 청국 조정은 주전론으로 기울어졌다.
3) 초기의 전황과 일본의 조선침략
-- 일본으로서는 기습에 의한 서전의 승리가 필요. 7월 25일 청군을 아산만으로 수송하고 잇던 영국 선적의 상선 고승호가 일본 군함에 의해 피격됨으로써 전쟁이 시작됨. 증원부대를 잃은 청군은 29일의 성환 전투, 30일의 아산전투에서 패퇴함. 일본은 8월 1일에야 선전포고의 조칙을 발표. 일본정부는 8월 14일에는 평양출정을 결정하면서 조선에 대한 정책으로서 `조선을 명목상의 독립국으로 승인하지만 일본은 직간접으로, 영원히 또는 장기간 그 독립을 부지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모욕을 받지 않게 한다`, 즉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다는 정책을 결정. 9월에 들어서 평양전투에서 승리하고, 황해해전에서도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