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이우환의 이러한 논조는 하이데거나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연상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그가 제시한 `관계`, `구조`, `장소`, `만남`은 그의 예...
본문/내용
이우환의 이러한 논조는 하이데거나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연상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그가 제시한 `관계`, `구조`, `장소`, `만남`은 그의 예술철학을 밝힐 수 있는 용어이자 개념이다. 이우환에게 있어서 예술작품이란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명백하게 실재함을 자각시키기 위한 구조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만남`이라는 구조를 통해 `자각`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는 기성품을 선택하는 체계를 `만남(rendez-vous)의 이론으로 확립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어떤 때 어떤 장소에서인가 대상을 우연히 발견하여 이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세상에 내어놓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와 대면한 대상은 임의적이고, 예술창조는 순간적이다. 그러나 `만남`을 자각하게 만드는 구조로서의 예술작품을 강조하는 이우환과 대상과의 우연한 만남을 강조한 레디메이드 사이에는 현격한 인식론적 차이가 가로놓여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우환의 관점으로 보자면 뒤샹의 변기조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대상화된 허상이라는 것이다.
중성질의 비인격적인 철판 위에 놓여진 자연에서 채집한 돌덩어리, 텅 빈 캔버스에 찍힌 단 몇 개의 붓질 흔적, 이우환의 작품은 재현, 표상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돌이 곧 세계이고 세계가 곧 돌이며 돌은 또한 작가라는 방식으로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바둑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의 장악, 돌 하나에 의해 야기되는 팽팽한 긴장과 같은 맥락에서 점 하나가 화면을 장악하는 지경과 동일시하는 그의 작품은 그가 개념주의를 철저하게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현시(顯示)된 것이라기보다 관념의 물질적 구현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어쨌든 주로 일본에서 비평가로 활동하였으나 이우환의 예술론은 한국에 이해와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소개되고 `환원`(reduction)이란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