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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정변을 전후해서 혼란과 무질서, 침체와 퇴영만을 거듭하면서 기울어가고 있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가 제창, 주도한 운동이 바로 그 `신민(新民)운동`이다. 나라가 바로 되려면 국민이 모두 새 생각 새 마음가짐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데서 비롯된 운동이었다. 이는 덴마크의 그룬트비가 일으킨 국민교육운동이나 멕시코의 루이스 코르티네스가 주장한 새 국민운동과 유사한 것이라고 하겠다. 한때 우리가 전개한 새 마음운동이나 새 생활 새 질서운동도 그 발상 자체는 이런 것들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라 본다.
중국 국민을 새로운 국민으로 만들기 위한 량치차오의 집념과 노력은 누구나 감탄할 정도로 열화(熱火)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 나라의 주인인 당시의 중국사람들은 보수성이 강해서였는지 아니면 완명(頑冥)해서였는지 그의 주장을 외면했으며 그의 노력에 매우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었으며 나아가서는 질시와 냉소, 모략과 중상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비분강개한 량치차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금기(禁忌)조항을 제시했다. 방관(傍觀)하지 말라. 둔도(遁逃)하지 말라. 소매(笑罵)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울어가는 국운(國運)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데, 중국을 새로운 중국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그 주인인 중국사람이 어쩌면 그렇게도 나몰라라 외면하고 숨고 피하고 나아가서는 침뱉고 손가락질까지 하며 비웃을 수가 있느냐. 앞으로는 참여하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방관 둔도 소매만은 삼가 달라는 그야말로 피맺힌 호소요 절규였던 것이다.
무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2년뒤인 1900년 그가 발표한 〈가방관자문〉(呵傍觀者文-방관자를 꾸짖노라)이라는 글은 정말 명문 중의 명문이라 평가되고 있다.
이때는 바로 의화단(義和團)의 난이 각지에 확대되고 외국 연합군이 북경을 침공하던 해다. 량치차오는 이 글에서 국난에 대처하는 구세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