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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똘루치는 푸이의 갑작스러운 유배 장면을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카메라 워크로 위로하듯 묘사한다. 그러다가는 어느 새 관객을 쾌락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달콤하고 전설 같은 분위기가 넘실대듯 화면에 젖어 들어오는데 이것은 영화 제작의 승리,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한편 자금성 안의 장면에서 관객은 미스터리의 중심을 짐작할 수 있는 조그마한 조짐만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베르똘루치는 완전히 생소한 문화를 다루면서도 그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공략한다. 그는 불가지의 세계를 껴안고 있다.
베르똘루치가 만일 푸이가 쓴 어린시절의 일기 『마지막 만주』라는 책을 읽었다면 동화의 원천으로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역사적인 궤적을 밟아 나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를 흥분시켰던 것은 푸이의 이중성이었다. 그의 초기 영화 <파트너>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이중인격』에서 끌어 온 것이다. <순응자>에서는 쟝 루이 뜨렝띠냥이 파시스트적인 귀족정치 이면에 숨은 자신을 정상화하려 하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는 폴(말런 브랜도)이 성적인 관계를 가질 때마다 스스로를 익명성 속으로 몰아넣는다.
푸이는 소멸의 확대 선상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신`과 같은 존재이면서 하찮은 목숨을 각진 사람이기도 하다. 사라져 가는 왕조의 살아 있는 유물인 것이다. 자금성에서 텐진으로, 다시 만주로 쫓겨간 그는 그곳에서 일본이 자신을 꼭두각시 통치자로 내세우자 다시 황제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푸이는 다시 한번 하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찢어진 반쪽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