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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간략한 논의에서 보듯이 우리의 현실은 서구의 현실과 분명히 달랐다. 하나의 이론이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그 현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이론이 현실과 전혀 무관한 진공 속에 정착될 수는 없다. 이론은 현실과의 부단한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법이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서구로부터 수입된 사회에 관한 철학적 이론은 그들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대비 속에서 논의되었다기보다는 서구 이론의 우월성에 편승되어 우리의 현실을 서구의 이론으로 바라보는 사대주의적 발상을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의 철학은 우리의 현실 속에도 없었고,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철학 속에도 없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서양철학 100년 도입사 과정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해방 이전의 일제 강점기 시절에 활동한 신남철, 박치우, 박종홍 등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철학을 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신남철과 박치우는 서구철학의 마르크스 이론의 틀 속에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면이 강하였고, 박종홍은 이들과 달리 서구 이론을 우리의 관점에서 재창조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헤겔과 실용주의를 통하여 국가주의를 확립하는데 이데올로그로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
또한 조국근대화의 물결이 한창 진행되었던 70년대에 활동한 장일조, 신일철, 이규호, 차인석, 임석진, 정문길, 백승균 등은 비판이론을 수용하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비판이론이 작동했던 서구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비교 분석을 결여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은 서구의 이론을 소개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비판 이론 중 프롬의 소외론에 편중된 현상은 다분히 이 이론이 우리 사회에서 상업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