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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정은 대원군 집정 시대에 이조 판서를 지낸 나의 삼종 증조부 되는 서강 대신 김종호가 쇄국의 꿈이 부서지고 대원군이 세력을 잃게 되자, 벼슬을 내놓고 당인리 근처에 있는 어떤 대관의 별장을 사서 그의 말년을 보내던 정자다.
나는 이십 칠팔 년 전인 7, 8세 때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간 적이 있다. 그 때의 창랑정은 외관상으로는 웅장하였으나 퇴색한 모습이었다. 안채로 들어가니 할머니 생신 준비에 바빴다. 집안 식구들이 북적거리면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고, 가구와 장식들이 신비하기만 했다. 이튿날, 12,3세 죄어 보이는 을순이라는 소녀와 유쾌하고 감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며칠을 더 머물면서 을순이와 친해져 메를 캐러 뒷동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땅 속에 묻힌 긴 칼을 하나 파냈다. 칼집은 썩었으나 찬란한 장식은 그대로다. 서강 대신 할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감개 무량해 했다.
이런 창랑정은 지금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강 대신 할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이 죽고 세상의 풍파에 밀려 창랑정은 없어졌다. 그리고 창랑정의 몰락을 재촉한 것은 서강 대신이 죽자 그의 증손자 김종근이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신문화를 구가했기 때문이다.
꿈에 그리던 창랑정을 다시 찾은 것은 이십여 년이 지나서이다. 그러나 그곳은 꿈에 그리던 추억과 향수가 깃든 곳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