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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운양호 사건 직후 일본은 [육군직제 및 사무장정]을 제정. 이에서 보면 전쟁 선포는 실제 육군경에게 귀속되어 있으며, 1878년의 [참모본부조례]에 의하면 참모본부는 황제에 직속되는 프로이센의 군제를 따르고 있다. 이는 군부 우월의 제도적인 장치.
이와 더불어 일본은 일찍부터 군비증강을 서두름. 1883년부터 시작된 해군건함계획은 대중소함 모두 42척을 보유할 것을 목표로 함. 1889년에는 징집령을 대폭 수정하여 국민개병제를 도입. 이에 따라 참모본부 제2국장 고가와가 1887년에 이른바 [청국정토책안]이라는 중국침략의 구체적인 구상을 건의. 1890,92년에는 일본군의 대연습으로 전쟁 준비상황을 점검. 그리고 1893년 4월에는 참모차장 가와가미가 조선과 청국을 방문하여 현지의 사정을 직접 시찰. 5월에는 해군군령부조례, 전시대본영조례 등을 제정하여 청국에 대한 전쟁준비를 완료하고 기회를 기다림.
3) 경제적 배경
혹자는 일본의 면사 면포 수출의 시장 확보를 둘러싸고 청나라와 경쟁을 벌인 것이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 수출되던 주요 일본제품은 면사와 면포였다. 그런데 1891,92년간 일본 면사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