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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형태는 이 작품 가운데서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만, 이 작품의 역사적인 배경을 일고 있는 이 시기의 전반적인 국제 정세를 간단히나마 적어둠으로써 이 작품을 읽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1805년에는 이미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 기운이 무르익어 잇었다. 이미 그 전 해에 나폴레옹의 황제 선언을 계기로 두 나라의 국교는 단절되어 있었다. 이 해에 러시아가 오스트리아, 플시아와 함께 영국과의 제 3차 대불 동맹에 가입함으로써 전쟁은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은 불로뉴에 함대를 집결시켜 영국 본토 상륙을 꾀했으나, 빌뇌브 중장이 이끈 함대가 넬슨 지휘하의 영ㄲ 함대에 항복함으로써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대륙에서는 이 해 10월에 바이에른 지방의 울름에서 마크 장군이 이끈 오스트리아군을 격멸했다. 그래서 쿠트조프 휘하의 러시아군은 빈까지 버리고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1주년 기념일인 1805년 12월 2일, 지금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조그만 시골도시 슬라프코크로 되어 있는 아우스터리츠에서, 프랑스군과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의 결전이 벌어졌다. 프랑스군 7만 3천, 연합군 8만 5천, 세 황제가 싸웠다고 해서 3당회전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싸움에서 나폴레옹은 크게 이겨, 오스트리아는 단독 강화 조약을 맺었다. 러시아는 이듬해인 1806년 프러시아와 동맹을 맺었지만, 나폴레옹은 프러시아 군을 격파하고 다음 해인 1807년에는 동프러시아의 프리틀란트에서 베니그센 휘하의 러시아 군을 격파했다. 이렇게 되자 러시아의 랄렉산드르 1세도 나폴레옹에게 화의를 신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1807년 7월에 틸지트 강화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러시아는 나폴레옹이 만든 바르샤바 대공국을 무역 금지 및 영국에 기항하는 상선의 봉쇄 등을 규정지은 것으로, 러시아의 무역은 러시아에 경제공항을 가져 올 만큼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