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제 3자는 동일성에 대한 추구이고, 무차별의 추구이며, 그리고 근원적 교체에서 기체가 되는 유일한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어떠한 동일성도 절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것은 단지 무차별성일 뿐이다.`라는 주 명제가 나온다. 제 3자 자체가 근원적 대립을 전제하므로, 바로 그 때문에 대립자체는 절대적으로 지양될 수가 없다. 제 3자의 존속 조건은 대립의 끊임없는 존속이며, 또 반대로 대립은 그 제 3자의 존속에 의해 제한됨으로써 존속한다. 그러나 어떻게 대립이 존속하는 것으로 사유될 수 있는가? 만일 어떤 하나의 제 3자 안에서 절대적으로 마주칠 수 있다고 전제한다면, 대립은 지양될 것이며, 무차별의 추구로 지양될 것이고, 따라서 모든 자연 활동성이 지양될 것이다. 그러나 대립이 존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오직 대립이 무한하다는 것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즉, 이러한 근원적인 대립과 무차별의 추구에 의해 생산물이 이루어지는데, 이 생산물은 그 대립을 단지 부분적으로 지양할 뿐이며, 바로 그러한 부분의 지양에 의해서 이미 지양된 대립과 구분되는 새로운 대립이 다시 발생하고, 또 이 새로운 대립에 의해 다시금 첫 번째 생산물과 구분되는 새로운 생산물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생산물 역시 절대적 대립을 지양하지 않은 채 남겨 놓으며, 따라서 그것은 단지 성질일 뿐이고, 그 성질에 의해 다시 하나의 생산물을 발생하게 하며, 이렇게 해서 무한히 계속된다. 그러므로 대립의 존속은 모든 생산물에 대해서 무차별 추구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 무차별은 각 순간마다 지양되고, 각 순간마다 다시 재생되어야만 한다. 각 순간에 있어 성질의 일반적 재생과 재 지양은 오직 제 3자에 대한 반발로서만 나타날 수 있다. 이 제 3자는 모든 성향으로부터 추상해 보면 무(=0) 이다. 즉, 단순히 동일한 것, 하나의 점이다.
차별로부터 무차별의 이행의 단계가 존재하듯이, 동역학적 과정에도 바로 그 만큼의 단계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