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퇴계문학에는 순차적 시간성 뿐만 아니라 융합적 공간 또한 설정되어 있다. 이것은 ‘지경’과 연결되어 있다. ‘심’의 작용인 ‘사’는 마음 속에 내재하는 ‘리’와 사물 속에 내재하는 ‘이’의 일치를 가능케 한다. 그 일치하는 구체적 방법이 바로 ‘지경’이다. ‘지경’으로 마음이 온전하게 작용한다면 천지화육의 작용 그것이 되며 궁극적으로 사물의 ‘리’와 나의 ‘리’가 화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천인합일’이라 표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성리학의 도를 문학에 담고자 할 때, 그 최고의 표현형태 혹은 경지를 ‘천인합일’이라 부른다. ‘천인합일’이란 엄격한 의미에서 문학적 표현은 아니지만 성리학에서 설정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천과 인이라고 한 것은 ‘천도’와 ‘인도’, 혹은 ‘자연’과 ‘인사’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천도’와 ‘인도’가 하나로 융합되는 것은 맹자가 ‘그 마음(심)을 극진히 하는 사람은 그 성품(성)을 지각하게 되고, 그 성품을 지각할 수 있다면 하늘(천)을 지각할 수 있다’고 말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심’과 ‘성’, 그리고 ‘천’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유가는 진작부터 강조해 왔던 것이다. 천도(혹은 자연)와 인도가 합일 된다는 것은, 천리와 인사가 관철되고, 인간이 이것을 체현할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퇴계도 이같은 방식으로 인식하였으므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보내준 「청야음」에 대한 자네의 생각은 대략 수긍이 가지만, 내 생각으로는 아무런 욕심이 없고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 맑고 깨끗하며 고상하고 심원한 마음 상태에서 한가롭게 광풍제월이 나타나는 때를 만나 자연히 ‘경’과 ‘의’가 융합하여 천인합일이 되면, 흥취가 초묘해지고 결정정미하고 종용쇄락한 기상이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