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유학에서 말하는 문학은 도(도)의 우위성, 선점성(선점성)에 의해 그 종속화를 벗어날 수 없다. 문학 뿐 아니라 예술 일반이 모두 유학자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여기(여기)로 파악될 뿐이다. 퇴계의 문예인식도 예외일 수 없다. 자연(자연)이 성리학 문화의 틀 속에서 일정한 규범을 강요받았듯이 문예도 순수한 자기규율에 따라 자유롭게 운동해 갈 수는 없었다. 문예미 역시 보편적인 유가주의의 율법과 정신에서 이탈할 때, 그 미적 가치는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문예의 미적 가치가 올바르게 발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가가 지향하는 공리적인 미적 욕구를 만족시켜야 한다.
공리적 욕구란 ꡔ예기ꡕ에서 이른바, ‘시교(시교)’라는 낱말의 구체적 내용을 가리킨다.
물론 이 시교의 목적은 봉건적 윤리도덕을 가지고 백성들을 교화하여 규범에 충실한 인간형으로 개조함으로써 치자의 통치기반을 공고히 함에 있다. ꡔ예기ꡕ에서 시교의 결과물로 규범화한 인간형이 지녀야 할 특성이 곧 온유돈후(온유돈후)이다. 그런데 봉건체제에 순응하고 봉사하기에 적합한 인간형인 이 온유돈후가 생래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면, 시교의 성립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후천적으로 길들여진다고 이해하는 편이 온당하다. 그렇다면 시의 내용, 혹은 품격이 온유돈후해야 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시가 담아내야 할 내용과 그 분위기가 지향해야 하는 한계를 지적해 말한 것이다.
퇴계도 이 온유돈후한 시의 품격을 존중했다. 이는 퇴계의 시대가 보다 짜임새있는 봉건체제를 모색해 가고 있던 사정으로 보아 지극히 자연스러운 문예인식 태도이다. 그의 문집에 보면, 온유돈후와 동의어로 쓰이고 있는 낱말로 겸허, 염퇴, 온순, 측달 등이 보인다. 이러한 낱말들은 한결같이 향내적(向內的)이고 소극적인 의지를 나타낸다.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대면하기 보다 반성이나 반추라는 여과의 과정을 거쳐 작자의 의지를 전달하려는 태도가 퇴계의 온유돈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