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본기의 초기 기사는 훗날 통일왕국을 이룬 삼국을 중심으로 편제된 것이기 때문에 통일왕국을 형성하기 이전의 사실도 삼국의 왕실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따라서 본기에서는 삼한 소국의 분립상태가 〈삼국지〉 위지 동이전처럼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 점과 관련하여 특히 논란이 되는 점은 삼국 초기의 기사가 갖는 신빙성과 연대이다. 종래 일본인들은 대부분 이를 전설 또는 허구적인 것으로 돌리고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는 신라본기의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었는데, 최근 국내의 연구에서는 사실 자체는 대부분 인정하는 추세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다만 연대는 그대로 믿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한편 편찬자에 의한 원자료의 변개(變改)에 대한 문제가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주의사가들에 의해 〈삼국사기〉가 김부식의 사대주의와 신라중심사관에 의해 심하게 변개된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편찬 당시 동양의 전통적인 편사 원칙인 술이부작의 원칙이 지켜졌고, 신라사에 편중된 것도 사료적인 조건에서 말미암은 바가 컸다.
삼국사기 신라중심, 또는 고의적 삭제라 볼 수 없어..
사료부족. 술의부작의 원칙 지켜. `충실히 사실만 썼다`
최치원은 〈제왕연대력 帝王年代曆〉에서 신라왕의 호칭을 모두 왕이라 고쳤지만, 신라본기에서는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 등 고유한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고 김부식은 그 당연함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유교적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신화나 설화 중 상당 부분은 생략되었거나 축약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의도적인 조작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