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원효의 화/쟁적 사유와 대승적 세상보기는 <하나>(一)의 동일성이 동질성의 획일적 지배가 아니고, <하나 아님>(非一)의 이타성이 이질성의 각일적 상충이 아닌 그런 <同卽異>와 <異卽同>이나 또는 <同而異>와 <異而同>의 사유를 진리로 여기는 가르침과 함께 간다. 그런 점에서 화/쟁적 사유로서의 대승적 세상보기는 저 접속사인 <卽>이나 <而>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여기서 화/쟁적 사유와 대승적 세상보기를 본질적으로 동일시하는 이유는 원효가 {대승기신론소}의 서문에서 말한 대승의 의미가 바로 화쟁적 사유의 역설적 배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접속사들의 의미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밝힌 보충대리의 법이고 갈마들기의 법이고 원효가 말한 代謝의 법이다. 원효가 말한 <同卽異>에서의 같음(同)은 동질성이 아니다. 그리고 다름(異)도 이질성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그 <같음>은 <다름>을 녹인 것이 아니기에 <다름>과의 이중성을 형성함에서 그 <다름>과의 동거 방식을 가리키고, 그 <다름>은 <같음>을 쪼갠 것이 아니기에 <같음>과의 이중성을 형성함에서 그 <같음>과의 차이 방식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同卽異>는 공동출두의 한 쌍으로서의 이중성을 가리키고, <같음>과 <다름>은 결코 별개의 실체로서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동일한 실체로서 합일하는 것도 아닌 그런 동거와 차이의 이중적 동시 관계를 표시한다. 그러므로 <같음>은 <다름>과 같이 존재하나 단지 그 존재 양식이 <同卽異>에서 그 이중성의 <동거>의 방식을 지시하고, <다름>은 <同卽異>에서 그 이중성의 <차이>의 방식을 지시할 뿐이다. 이점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과거의 해석은 이런 이중성의 동거와 차이의 한 쌍을 간과하고, 전적으로 동일성과 이타성이 서로 바깥에서 마치 이 동일성과 저 이타성이 대비되는 외면적 관계인 양 보려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