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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동강중심설
고조선의 중심을 대동강유역으로 본 견해가 지금까지 학계의 통설로 인정되고 있으나, 일부학계로부터 적지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대동강중심설이 일제의 식민지사학을 계승하였다하여 이를 비판하고 오해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보다 큰 역효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대동강중심설은 일제식민지사학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고려시대에서부터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통해 알수 있다는 것이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더 대동강중심설의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견해에서 비롯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단군은 민족시조의 차원으로 격상되어 국가적 숭앙의 대상이 되었으니, 이는 곧 신화적 존재로서의 단군이 역사적 실제 인물로서 합리적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전기 사서에서는 고조선의 중심지를 압록강 이남에 비정하였으며, 16세기 이후의 사서들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는 16세기 이후 대명관계의 안정으로 북방 고토에 대한 관심이 퇴조되고 압록강 이남의 현 강역을 고수하려는 심리가 작용한 때문으로 이해된다. 양란이후에는 상고사의 적극적인 해석이 시도되었는데, 한백겸의 『동국지리지』가 대표적인 저작이다. 그는 부여·고구려·발해 등 만주에서 건국되었던 국가들을 개별적으로 다룸으로써 국사 연구의 지리적 공간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고조선의 중심지는 통설에 따라 압록강 이남에 두었으며, 고조선과 삼한이 한강을 경계로하여 북과 남으로 병립하였다는 체계를 세움으로써 이후의 고대사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17세기 중엽부터는 정통론이 도입되어 삼한의 역사적 존재가 큰 비중으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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