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국제체제 결정론이나 대통령 중심의 외교정책 연구가 한계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외교정책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특정한 현상들을 이들 접근법들이 설명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체제 결정론과 관련하여 검토해 볼 때, 미국을 중심으로한 국제사회는 1980년대에 GATT 체제 하의 우루과이라운드(UR)를 출범시켰고, 자유무역을 기본가치로 하는 범세계적인 무역과 통상 regime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한국은 ‘예외없는 시장개방’이라는 기본전제에도 불구하고 ‘쌀 시장 개방 절대불가’라는 입장을 반복해서 주장했다. 그리고 비록 최종적으로는 한국도 UR에 가입했지만, 쌀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끝까지 저항했다. 국제체제결정론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들을 설명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오히려 한국의 국내적 시각에서부터 분석되어져야할 내용인 것이다.
한편, 대통령 중심적인 접근들도 설명의 적실성이 한계를 가지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UR 가입과 쌀 시장 개방 문제로 곤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쌀 시장 개방은 불가피하다며 대통령의 정책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관료였다. 국제적 압력과 보조를 맞춰 대통령의 입장을 변경시키는데 앞장선 국내 행위자가 관료였던 것이다. 또한 1992년 남북 정부간 접촉에서 협상 대표단의 관료들은 대통령의 훈령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훈령내용을 조직이익에 유리하게 서로 왜곡시켜 해석하고 행동하기도 했다. 과연 이러한 현상들이 대통령 중심의 접근법으로 설명될 수 있을 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본 논문은 1990년대부터 발견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을 설명하고, 그 유형을 검토하기 위해 기존의 접근법들과는 다소 차별적인 인식태도와 분석 모델을 채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