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러나 건국 초기에 그렇게 많이 창작되던 악장은 얼마 가지 않아 문학적 정착을 얻지 못하고 쇠퇴해 버렸다. 그것은 첫째, 악장이 원래부터 음악이 주가 되는 것이어서 가사가 따로 독립될 성질이 되지 못했고, 둘째, 악장이 처음부터 홍보용이라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 왕조 초기의 불안함이 사라지자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어쨌든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이 나오기 전까지 꾸준히 악장이 지어지면서 예악의 정리 작업이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조선 태조는 이 일을 건국 1등 공신인 정도전에게 맡기었다. 이 일을 맡은 정도전은 스스로도 많은 악장을 창작했다. 「납씨가」, 「정동방곡」, 「문덕곡」, 「몽금척」, 「수보록」 등은 그의 문집 『삼봉집』에 한시 형태로 전한다. 「신도가」는 『삼봉집』엔 없지만 『악장 가사』에 국문 시가의 형태로 남아 전한다.
<악장>은 왕조창업의 당위성을 널리 입증하고 통치질서를 확립할 목적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에 왕업을 찬양하고 기리는 송도적頌禱的 성격을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2. 작품의 형식과 내용(특성)
악장은 음악적 성격에 따라 아악·당악·향악 등으로 나뉘며 제향·연향 등 행사의 성격에 따라서도 그 형태가 다양하다. 언어 표기의 형식에 따르면 국문악장과 한문악장, 그리고 한시에 현토(懸吐)를 한 현토악장으로 대별된다.
1) 국문악장
정도전의 〈신도가 新都歌〉, 정극인의 〈불우헌가 不憂軒歌〉, 하륜의 〈신도형승곡 新都形勝曲〉·〈도인송도곡 都人頌禱曲〉, 작자 미상의 〈유림가 儒林歌〉, 상진의 〈감군은 感君恩〉 등이 있다. 〈신도가〉 는 천도 후 새로운 도읍지에서 나라의 위엄을 기리며 자손 만대의 번영을 기약하는 내용이다. 〈감군은〉은 우리말 노래로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형태를 보인다. 이것들은 단련형식(短聯形式), 10장 이내의 연장형식, 그리고 후렴구를 덧붙인 형식 등으로 되어 있어 고려속요를 수용한 면모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