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김덕영은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전술과 용력으로 중요한 적장을 하나씩 죽이고 왜적의 주력을 다 꺾었다. 몸에 비늘이 돋고 목이 달아나도 칼을 휘두르는 조서비는 기생 화월의 도움으로 죽였다. 모당은 철환에 맞아 죽은 척하고 있다가 죽였다. 였다. 땅에 구덩이를 파놓아 조선 군사를 패하게 한 하복은 굽히지 않고 추격해 죽였다. 불행히 적에게 사로잡혔으나, 결박을 끊고 북지를 죽였다. 구름 위에서 도술을 부리는 평수길은 공중으로 뛰어올라가 죽였다. 왜적은 마침내 약간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가 왜왕에게 김덕영 때문에 존찬 사연을 아뢰며 원통해 했다. 김덕영의 이러한 활약은 위대한 민족적 영웅에 대한 역사적 요청의 표현이다. 사실의 기록자도 `국운이 불행하여 죄 없이 죽었다. 하늘이 몇 년의 목숨만 더 허락했어도 정유재란 때 적이 어찌 양호를 짓밟는 데까지 이르렀겠는가. 당시의 뜻있는 사람으로 개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했는데, 소설에서 바로 이런 생각을 실천해 보았다 할 수 있다. 소설에서의 김덕영은 사실에서와는 달리 내적의 박해를 외적과의 투쟁을 통해 격파할 수 있었으므로 민중적 영웅의 불행에 차지지 않고 민족적 영웅의 영광을 실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김덕영은 살아서 영광을 누리지 않고 다시 침공해 온 왜적과의 싸움에서 죽었다. 조서비의 아우 조식, 북피의 아들 유관, 평수길의 아우 평식이 부형의 원수를 갚는다고 재침해 왔는데, 김덕영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김덕영은 죽게된다. 용력과 전례를 보아서 김덕영은 이렇게 죽지 않아도 될 만하다. 조식마저 처치했다 해도 부자연스러을 것이 없다. 그러나 죽음은 필연적인 결말이다. 김덕영은 살아서 영광을 누릴 인물이 아니다. 살아서 내적에게 희생되기보다 외적과의 싸움에서 산화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민중의 요청이 소설적으로 표현되었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