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사랑한다”는 것은 그 말 자체만으로는 모호한 초월기표다. 또한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의미를 만드는 행위이며, 삶에 형식을 부여하기도 한다. 체호프의 <사랑하는 연인>에서 보면, 주인공은 노천극장 지배인과 결혼했을 때는 “연극, 극장표,관객...” 등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해했다가, 남편이 죽고 목재상인과 결혼했을 때는 “건축 자재, 목재 값...”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목재상인인 남편이 죽고 수의사인 사람과 가까워졌을 때는 “가축, 축사...” 등의 이야기만 하게 된다. 여기서 연극→목재→가축으로 왜 사랑은 의미가 변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욕망은 인간이 살아 있는 한 늘 다 채워지지 않는 차액이 있기 때문에 늘 결핍에 시달리고, 욕망은 욕망을 부르게 된다.
“사랑한다”는 말과 더불어 모호성이 큰 기호는 “사랑하는 사람” the other 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늘 자기가 사랑하는 것보다 상대편이 덜 사랑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것보다 덜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상대의 것을 속속들이 알려고 하지만, 읽기 어려운 기표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기호다.
사랑의 모험이 지속되는 3단계를 기호학적으로 풀어 보면, 만남→호기심→고백의 단계로 이야기할 수 있다. 만남의 단계는 우연히 이루어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매료되어서 대상을 생각하게 되고, 호기심의 단계에서는 상대방을 탐색하게 된다. 상대편의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는 이 단계는 라캉의 이론에서는 상상계요, 은유다. 완벽한 낙원으로 믿고 있기에 기호의 모호성이 없으므로 기호의 경제학은 제로이다. 고백의 단계에 들어서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