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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서기 1632년 조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반군에게 점령당하자 이곳 공산성으로 피난 와서 강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등성이에 올라 두 그루의 고목에 기대여 한양 쪽을 바라보며 환궁할 날만 기다리는데 이괄의 난을 평 정하였다는 소식을 이곳에서 듣게 되어 크게 기뻐한 나머지 두 그루의 고목에 종3품 통정 대부 벼슬을 내리고 쌍수정 이라는 이 름을 내려 주었는데 뒤에 신하들이 정자를 짓고 비석을 세워 쌍수성이라고도 하였다.
인조 임금이 이곳에 피난 와 있을 때 어느 날 임씨라는 농부가 찰떡을 해가 지고 임금님께 바쳤는데 그 떡맛이 좋고 처음 먹어 보는 떡이므로 신하들에 떡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덕 이름을 지어 내렸는데 임서방이 절미한 떡이라 하여 임절미 라 한 것이 오늘날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갑사
임진왜란때 소실된 절을 중수할 때 인호 스님 등 여러 스님이 노력하였으나 진척이 없어 고심하던 ,인호 스님의 꿈에 소 한 마리가 내가 지어 줄테니 걱정 마시오 하면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잠에서 깬 스님이 이상하여 밖을 나가 보니 꿈에 본 소가 있었다. 그 후 필요한 자재들을 이 소가 운반하여 갑사 중건을 매듭지 었는데 고생하면서 힘을 다쓴 소는 병들어 죽어 버려 소의공을 고맙게 여긴 스님들이 탑을 세웠다는 공우탑이 있다.
마곡사
구한말에 백범 김구 선생이 민비 시해 사건에 중요한 인물인 일본 헌병을 죽여 인천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 위기를 모면하였으며 약 130년 전 어떤 앉은뱅이가 불구를 고치기 위해 절이 찾아와 법당에서 100일 기도를 하는데 참나무 돗자리를 100일 동안에 걸쳐 짜면서 부처님께 불구를 고쳐 달라고 기도하였더니 돗자리를 다짜고 밖으로 나갈 적에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서서 걸어 나갔으며,지금도 법당에는 앉은뱅이가 짠 자리가 법당에 있고 경내에는 세계에서 한국 , 인도, 중국 세나라 밖에 없는 원나라 영향을 받은 라마식 5층 석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