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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지국의 성격
① 진왕의 문제
앞의 A, B사료에서 보았듯이 목지국과 진왕은 문제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삼한에 관한 사료가 거의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내상외략하는 중국사서 속에 실려있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밝혀내기에는 워낙 역부족이다.
종래 이 진왕의 실체에 대해서는 ‘진왕=삼한의 총왕’, 즉 삼한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견해는 주로 사료 A의 『후한서』 동이열전의 기사를 토대로 하여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서 삼한에 관한 한 『후한서』보다는 『삼국지』를 취신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면서 ‘진왕=삼한의 총왕’은 비판을 받게 되고, 새로운 각도에서 진왕의 성격이 조명되게 되었다.
진왕과 진국과의 관련문제에서 이병도씨는 진왕을 진국의 왕으로 보았고, 말송보화씨와 김정배씨는 진국이란 다만 고지진국이고, 진왕은 대략 3세기 중엽의 일이라고 하여 진국과 진왕을 연결시키지 않았다. 또한 윤내현씨는 진국은 원래 요하 동부유역에 있던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는데, 고조선이 멸망하자 진국의 지배계층이 삼한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진왕이 삼한과 연관을 맺게 된다고 하였다. 다음 진왕의 성격문제로는 삼한의 총왕이라는 견해와 천관우씨는 『삼국지』 마한조의 진왕은 백제국왕이요. 진·변한조의 진왕은 사로국왕으로 보면서 이를 동명이체로 파악하였다. 윤내현씨와 박찬규씨는 『후한서』와 『삼국지』의 기록차이에 주목하여 전자는 후자의 내용보다 앞선 동한 시대의 상황을 전하는 것이라 하고, 진왕에 대해 중국의 동한 시대까지는 진왕이 삼한 전 지역을 통치하였으나, 삼국시대에 이르면 진왕의 통치영역이 그 일부로 줄어들게 된다고 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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