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가사 <관동별곡>에는 정철의 다른 가사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충군사상이 반영되어 있다.바로 이 충군사상 때문에 작품에서 노래한 민족적 긍지감과 시인의 이상이 인민적인 것으로 울리지 못하고 있다.<관동별곡>에서는 또한 금강산을 노래하는 서정적 주인공의 정서 상태가 양반들의 한가한 유흥적 기분과 결부되어 노래된 제한성도 있다.”
이러한 비판은 <관동별곡>에 나타난 국토 예찬을 전체적 맥락에 관계없이 부조적 수법으로 강조하여 민족적 긍지 등으로 확대해석한 결과의 반작용으로 보인다.오히려 <사미인곡>을 평하면서 “임금에 대한 충정을 노래한 밑바닥에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이 안받침되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을 좀더 섬세하게 발전시켰어야 했다.충군사상과 조국애,인민에 대한 사랑이 상호 상승작용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도외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물론 문학사의 발전적 전개과정에서 작가와 작품의 진보적 의미와 제한을 엄밀히 따져야겠지만 제한성은 그것이 어떤 작가.작품을 막론하고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봉건적 이데올로기인 한,개별 평가에서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춘곡>은 이른바 ‘안빈낙도’를 내세우고 있는 작품이다.사실 사대부들의 풍류 -안빈낙도- 뒤에는 재지적(在地的) 기반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빈(貧)’이라 하지만 생활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 작자 정철(1536-1598)에 대하여
선조 16년 4월 예조판서 정철이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그해 9월에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내용인즉 “정철이 동서 붕당 싸움질에 근원이 되고 있다”는 점과 “정철이 유생들을 움직여서 상소질하게 하여 이리저리 얽어서 화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