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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우기는 조선시대 세종 때로부터 조선말기까지 강우량을 측정하던 기구로 1441년(세종23 년) 8월 호조(戶曹)에서 건의, 다음해부터 제작 사용하였다.
「서운관(書雲觀)에 대(臺)를 만들고 깊이 2척(尺), 지름 8촌(寸)의 철기(鐵器)를 주조하여 대(臺) 위에 올려놓고 빗물을 받아 깊이를 재서 보고케 하였다. 각 도(道)와 군현(郡縣)에서도 경중(京中) ?기의 예를 따라 자기(磁器)나 와기(瓦器)를 사용, 객사정(客舍庭에) 놓아두고 수령(守令)이 수심(水深)을 재서 감사(監司)에게 보고케 하고 감사가 호조(戶曹)에 전문(傳聞)케 하였다. 」-세종실록
1442년 5월 8일(세종24년)에는 측우기 제작법과 사용법을 정한 기록이 세종실록[권26]에 수록되었다.
① 철을 부어 우량측정기를 만들고 측우기라 명명하였다. - 길이 1. 5척, 직경 7촌
② 대를 만들어 그 위에 측우기를 올려놓는다.
③ 대나무나 나무로 자를 만들어 측정한다. 측정은 주척(周尺)으로 한다.
④ 강우량과 비가 그친 일시 등을 정확히 기록하여 보고한다. - 수심은 척, 촌, 분으로 측정
이때 만든 철제 측우기는 길이 32㎝, 직경 15㎝로 환산되며, 이 규격에 따라 각 지방관서에서는 자기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