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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젖는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 518 민주항쟁에 대해서는 몇마디 말로 설명될 수도 없거니와, 더 길게 왈가왈부 한다는 것이 무리라 생각되어 광주일보의 5·18항쟁사의 서문으로 대신한다.
실록 5.18광주항쟁사 / 1979년 12월
M16소총과 탱크 몇대/집권전야의 야비한 축배
(자료출처 :광주일보, 5·18 항쟁사)
1979년 12월, 그들은 그들이 저지르는 일이 역사를 이토록 뒤헝클어 놓은 일인지 깨달았을리 없었을 게다. M16소총과 탱크 몇대만 있으면 손에 쥘 이른바 통치권을 놓고 그 무뢰한들에게 역사나 정의는 한낱 따분한 구호일 뿐이었음이 분명하다.
쿠데타로 18년의 세월을 절대권력과 함께한 朴正熙소장을 선배로 모신 그들에게 79년 겨울의 한국은 그들식의 우국충정을 자극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허수아비 대통령뒤에서 집권전야의 야비한 축배를 들던 그들도 광주라는 도시가 그들 손에 이토록 많은 피를 묻게 할 줄은 몰랐으리라.
80년 광주에서의 시민학살. 그것은 한국민주주의의 원죄였다. 그리고 그 원죄는 어처구니없게도 코흘리개가 성인이 되는 동안의 세월동안 속죄되지 않았다.
수백명의 양심가가 악랄한 박해를 받고, 수천명의 지식인이 위선을 강요당 하고, 수만명의 대학생이 투옥되었으며, 수십만명의 광주시민들이 한을 품고 사는 동안 한국사회는 이 죄악을 망각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리하여 광주학 살의 최고책임자 전두환前대통령이 명산고찰에 현대판 유배를 가게 되었을 때 그것이 마치 光州학살에 빚갚음하는 셈이 되는 양 떠들었고, 엄동에 산 사에서 지내온 그를 동정하는 자도 있었다. 80 光州 를 풀지않고선 한국의 민주주의는 있을수 없다.
光州를 원칙대로 처리하고 나야 비로소 이땅에 민주주의가 실천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光州의 해법엔 고통이 따를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