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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西學」, 「蘭學」의 경향
조선 西學이나 일본의 蘭學은 전통적인 봉쇄사회인 일본과 조선에서 서구와 서구문화에 대한 학문적 대응으로 전개되었다. 전개의 양상과 개별적 경향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연구자의 신분에 나타난 경향
조선 西學은 李翼과 그의 학통을 이은 성호학파와 홍대용과 그 뒤를 이은 북학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近畿학파는 李翼이 그러하듯이 일생을 초야에 묻혀 학문에만 힘써 온 在野의 유교지성이거나 在野의 전직관료들이 주된 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유교적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었고 유교적 예속을 실천해 오던 유학자들이었으나, 思辨化되고 虛學化 된 성리학과 피폐하고 수탈 당하는 농촌사회를 바로 잡고 국가 기강과 경제활동을 바로잡으려는 현실 감각을 깨우친 사람들이었다.
한편, 북학파는 거의 중견관련학자들이었으며, 그리고 북경에서 서양문물을 직접 대할 기회를 가졌던 유교적 관료였다. 이들 近畿학파나 북학론자들은 일부 중서민층의 지식인들오 있었으나 대개가 양반이었다. 이들은 한역된 서양서를 가지고서 서양에 대한 학문을 시도한 것이지, 결코 그들의 문자를 배워 서양문헌을 직접 연구하지 않았다.
일본의 蘭學의 경우는 그 신분이 통사와 의사, 그리고 하급무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蘭學은 通詞들에 사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그들은 구전으로 네덜란드어를 익히다가 1745년 吉宗將軍에 의해 네덜란드 문자의 습득이 허락되어 한층 깊게 네덜란드어를 공부하게 된다.
長崎난학의 선구자인 西善三郞, 志筑忠雄이나 『長崎하루마』의 편찬자 中山時十郞, 吉雄權之助, 西儀十郞, 石橋助十郞등도 모두 和蘭通詞였다. 통사들이 통역이 主務였기 때문에 어학연구에 흥미를 가졌으나, 기술학에 뜻을 두기도 하였다. 한편, 본직이 의사였던 衫田玄白, 前野郞澤, 宇田川玄隨, 大槻玄澤들도 난학을 익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