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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감정까지 포괄하는 신학적 입장을 정의하려 했다.
이 글에서는 에드워즈가 마주했던 당대 문제를 먼저 짚어 보고,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대 계몽주의 철학을, 특히 존 로크의 경험주의 철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에드워즈가 존 로크의 인식론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페리 밀러와 같은 학자는 에드워즈를 로크의 계승자로 여긴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로크의 입장을 수정없이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의 출발점은 개혁주의 신학이었지 로크의 인식론이 아니었다. 이는 오늘날 철학적 신학 또는 기독교 철학이 신학과 교회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다`는 신학적 고백이나, `모든 곳에 부분적으로 진리가 있다`는 초대 교부의 말이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는 신약 성경의 권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독교의 영성과 경건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몰던 계몽주의 철학에 대해 그 철학 자체를 전면 거부하는 길을 택하기보다, 잘못 사용되는 이성에게 `세례`를 주어 올바른 신학 안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에드워즈는 균형잡힌 신앙인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찬양 집회나 심령대부흥회와 같은 집회가 TV 등을 통해 보여질 때 비기독교인들은 거부감을 갖기 십상이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시사프로그램에서 문제로 다루는 이단 종파들의 집회 장면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CCM 컨서트와 같은 공연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기뻐하고 은혜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과연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정인가? 아니면 공연자가 인위적으로 조작해내는 감정인가? 이러한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는 설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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