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병의 원인에 관한 진단의 정확성 여부가 증상에 대하여 약을 쓸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 만일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약을 쓴다면 어쩌다가 우연히 치료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이다. 갑골 복사로부터 상나라 사람들이 병이 생기는 원인을 네 가지로 보았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귀신이 해를 끼친 것이다. 예를 들면 `상제께서 왕에게 병이 생기게 하였습니까?` `상하 뭇 신령들께서 왕에게 병이 생기도록 하시지 않았습니까?` `병이 생겼으니, 황윤께서 병이 나도록 하셨습니까?` 라고 하여 병을 내릴 수 있는 신령은 상제. 자연계의 뭇 신들과 선조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귀신들은 전부 재앙을 내려 병이 나게 할 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갑작스런 기후의 변화이다. 예를 들면 `바람에 의하여 병이 생겼습니까?` 라고 하여, 상나라 사람들은 몸이 쇠약해도 기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병이 생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세 번째는 음식을 조심하지 않아서 병이 생긴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고(蠱)라는 벌레가 이에 병이 생기게 하였습니까?`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고(蠱)자는 그릇 속에 작은 벌레들이 들어 있는 모양을 그리고 있다. 채소 속에도 벌레가 들어 있고,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생기는 것은 고인들이 흔히 보아왔던 일이다. 고인들은 회충. 토사. 치통 등이 음식을 조심하지 않아서 작은 벌레를 삼켰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상상을 쉽게 할 수가 있었다. 네 번째는 꿈으로 병이 생긴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많은 귀신들이 꿈에 보였는데 병이 생기겠습니가?` `왕께서 어린아이 꿈을 꾸었는데 병이 없으시겠습니까?`라고 하여, 상나라 사람들은 꿈은 정령에 의하여 꾸게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정령은 재해를 내릴 수도 있었으므로 꿈 때문에 질병이 생길 수도 있다고 믿었다. 미개화된 종족에서도 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이와 비슷하게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