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내각제도의 발전
태조는 중서성을 폐지한 후 모든 정무를 총람하게 된 황제를 보좌하도록 홍무 13년 사보관을 설치했다가, 15년 이를 폐지하고 전각대학사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비서기구일 뿐 국사에 참여하는 기능은 없었다.
건문시대에는 제태・황자징・방효유 등이 모두 한림출신으로서 대학사의 명칭은 없었지만 기무에 참여하여 기능적으로 후의 내각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영락시대에 이르러 남경의 사정에 어둡고 정국을 수습할 강력한 보필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영락제는 즉위하자마자 해진・양영・양사기・호광 등 7인을 문연각에 입직시켜 기무에 참여하도록 하였고 영락 14년부터 이들에게 전각대학사를 가수하기 시작하면서 명실상부한 명조의 내각제도가 출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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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창업황제 이외에는 보통 ‘조’를 붙이지 않으나, 원의 세조,청의 세조,성조와 같이 정복왕조로서 중국에서 왕조를 개창한 경우나 그에 준하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붙이는데 성조를 그에 견준 것이다.
이들 각신의 원관은 모두 한림관이거나, 또는 입각 전에 한림관을 제수받고 입직하였으나, 이들의 지위는 정 5 품을 넘지 않도록 하여 태조가 의도했던 대로 임무는 중요하게 하면서도 질은 낮게 하여 권신의 출현을 방지하였다. 이 시기는 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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